처벌 쇼핑?
다크웹에서 세계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하면서 4억여 원 이상의 금전적 이득을 취한 손정우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미국이 손 씨에 대해 송환을 요구하자, 손 씨의 미국 송환을 막기 위해 손 씨의 아버지가 직접 손 씨를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고발했다. 우리나라 법원은 손 씨의 미국 송환을 거부하고 우리나라에서 처벌받도록 결정했다. 손 씨를 미국에 비해 형량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한 꼼수였다. 반대로 국내 범죄자가 국내에서 죄를 저지르고 필리핀 등, 우리나라보다 형량이 낮은 국가로 도피한 뒤, 송환을 피하기 위해 현지에서 다른 범행을 저지르고 일부러 수감되는 사례도 더러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처벌이 낮은 국가를 선택해서 처벌을 받으려는 행위를 '처벌 쇼핑'이라고 부른다. 정보통신과 교통편의 발달로 범죄 역시 특정 지역이나 국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국제화된 오늘날, 국제적으로 용인될 만한 피해자 중심의 송환 기준이 정립되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테라 · 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피의자인 권도형 씨에게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미국 송환 판결을 내리자 해당 사건 피해자들이 환영의 뜻을 밝힌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미국의 형량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형벌체계 차이 때문에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가중주의라는 형벌체계를, 미국은 병과주의라는 형벌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그 차이점을 알아보겠다.
가중주의
우리나라의 가중주의의 대표적인 예는 '형법 제135조 공무원의 직무상 범죄에 대한 형의 가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이용하여 본장 이외의 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조금 어려워 보이는 이 말을 쉽게 풀어보자면, 여러 개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형을 선고할 때, 가장 중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형량에 1.5배를 가중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어떤 범죄자가 여러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사기로 2년, 절도로 3년, 강도로 5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했을 때, 2년짜리, 3년짜리는 무시하고 최고 범죄의 형량인 5에 1.5를 곱해 가중한다. 그러면 7.5년 곧 7년 6개월 형이 도출된다. 감형, 가석방이 없다고 치면 이 범죄자는 이만큼의 형기를 살게 되는 게 우리나라 가중주의의 판결이 되는 것이다. 거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기징역은 최대 50년이 상한이다. 어느 정도 용인이 가능한 생활고형 범죄, 전혀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인한 범죄나 가벼운 경범죄의 경우,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중범죄가 겹치거나 피해가 광범위한 경우 형량이 과소화된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운 형벌 구조다.
병과주의
병과주의는 각각의 죄에 정한 형을 병과(합산)해서 처벌하는 방식이다. 가끔 미국에서 200년 형 따위의 말도 안 되는 판결이 나오곤 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이런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한 범죄를 몇 건 때문에 중범죄자보다 형량이 높아지는 모순이 있어 상한선을 두는 국가도 있다. 미국은 이마저 없다. 합산하는 만큼이 형량이 된다. 위에서 든 예의 범죄자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면 2+3+7=10으로 10년 형을 선고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권도형 씨의 미국 송환 결정을 반기는 피해자들이 많이 있다. 뉴스 기사마다 미국 가면 100년이니 110년이 하는 헤드라인을 날리는 이유도 미국이 이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광범위하고 피해액만 50조가 넘는 대형 경제사범 권도형 씨. 그의 처벌 쇼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항소한다고 한다. 그가 미국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는 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이러한 병과주의은 영미법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유기형을 병과할 경우 실제로는 무기형과 같은 결과가 되어 자칫 형벌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문제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