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 일지
총선이 50일도 남지 않은 현시점에 개혁신당이라는 제3 지대 빅텐트가 뿌지직 찢어져 버렸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가 합당을 결국 취소하고 만 것이다. 지난 9일, 개혁신당 · 새로운미래를 중심으로 소위 제3 세력들이 개혁신당으로 뭉쳤었다. 거대 양당 구도를 깨고 다당제로 나아가자는, 좋지만 조금은 식상한 명분이었다. 이런 명분은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것으로 그 수명이 반드시 짧다. 다당제라는 것이 다양한 민의를 의회에서 논의하자는 좋은 취지지만, 당이 다르다 하여 정책과 이념이 반드시 다르지 않고, 그 역으로 당이 같다 하여 정책과 이념이 반드시 같지도 아니하다. 그러니 빅텐트는 자신들의 친정집에서 꾸렸어도 되었다. 진정으로 이 분들이 다당제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적 용단을 내려야 했다면, 탈당과 이합집산보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맹점부터 고치려고 노력했어야 맞다고 본다. 제3 지대는 그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이들은 자기 집을 뛰쳐나왔고 그렇게 바깥에서 만났다. 이준석과 이낙연이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다. 그런데 합의 일주일 만에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11일 만에 이낙연 대표가 합당을 취소함으로써 결별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들의 결별은 이미 예정된 결말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적장과의 오월동주, 좌초하다
두 세력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이준석이 배복주(전 정의당 부대표이자, 2024년 정의당을 탈당하면서 이낙연의 새로운미래에 합류)와는 당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불거진 문제가 첫 번째다. 배 전 부대표는 그동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지지해 왔는데, 이준석 대표는 이를 예전부터 비판해 왔다. 배 전 부대표는 이석기 전 의원 석방운동이라든가, 성소수자 차별 철폐 활동에 적극 나서는 등, 진보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개혁 보수를 지향하는 이준석 대표와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두 번째로 불거진 문제는 개혁신당이 총선 정책과 선거운동 방향 결정 권한을 이준석 대표에게 몰아주면서 나타났다. 당명을 개혁신당으로 하는 대신, 총선 주도권은 이낙연 대표에게 주기로 한 합의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의 오월동주는 이렇게 싱겁게 좌초해 버렸다.
이런 소모적인 이합집산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성향도 정치적 뒷배도 너무나 다른 두 세력은 서로에게 똑같은 것을 원하였으니, 당권, 곧 우두머리의 자리다. 공동대표라고는 하나 실제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하는 내내 으르렁대던 두 집단이 한 울타리에서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하면 그런 이전투구, 누구나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측 가능하다. 이런 상황일진대, 사후적으로 보아, 안일하게 단순히 권한을 나눠갖는 정도의 초보적인 수준에서 합의를 끝냈던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무책임하고 정무적인 감각이 뒤떨어지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 무의미한 소요에 휩쓸리고 상처받고 짜증이 나는 건,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그들의 정치적 생명에 결코 이로울 리 없다.
전망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된 두 세력, 양쪽에 두 가지 과제가 대두된다. 현역의원을 모아야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3월 28일, 후보자등록이 마감되기 전까지 현역 의원 5명 이상이 있어야 중앙선관위에서 주는 선거보조금 20여 억 원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생 정당 운영에 이런 보조금의 비중은 매우 크다. 그러니 다급할 수밖에 없다. 또 신생정당의 경우, 인지도에서 밀리기 때문에 투표용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야 하지, 고만고만한 정당들과 섞여서는 득표가 어렵다. 의석 수 대로 정당기호 순번을 정하는 우리나라 선거제도에서 조금이라도 앞 번호를 배정받기 위해서는 현역 의원 수급이 필수적인 요소다. 두 번째로 지지율을 올려야 하는 문제다.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가 합치기 전에 각각 3%였던 지지율이 합친 뒤에 4%가 되었었다. 성향이 다른 양측 지지자들의 이탈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어려운 과제가 당장 50일도 남지 않은 기간 안에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로 대두되었다. 양측 지도부의 지도력이 얼마나 먹힐지 모를 일이다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이합집산에 신물을 느낀 유권자 층이 아예 등을 돌릴 우려도 있어 이번 합당 합의와 파기는 악재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해서 쉬 풀어나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신당 보조금 어떡해?
개혁신당은 합당 직후, 보조금 지급 기준인 현역 의원 5명을 채워, 6억 6000여만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수령했다. 그러나 이낙연 대표의 합당 취소 후, 다시 4명이 되면서 보조금 지급 기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보조금 먹튀라는 뒷말이 슬슬 나오고 있다. 이것도 하나의 악재다. 이준석 대표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납세자로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생각이다.